![]() 북일 장고봉 고분 융합 / 사진제공=AI호남뉴스 |
눈이 내려 봉분의 윤곽이 선명하게 드러난 해남군 북일면 방산리 장고봉 고분. 사진에서는 자연 구릉처럼 보이지만, 발굴조사를 통해 방형부와 원형부가 결합한 장고형 고분의 구조와 주구가 확인됐다. 사진만으로 축조 시기와 내부 구조를 판단할 수는 없으며, 역사적 성격은 발굴 유구와 출토 유물을 종합해 해석해야 한다.
【해남=AI호남뉴스】 aihnnews@kakao.com
한겨울 눈이 내려앉은 해남군 북일면 방산리 장고봉 고분은 언뜻 보면 낮은 산이나 자연 구릉처럼 보인다. 그러나 눈이 봉분을 고르게 덮으면서 앞쪽의 길게 뻗은 부분과 뒤쪽의 둥글게 솟은 부분이 하나로 이어지는 독특한 윤곽이 더욱 선명하게 나타난다.
장고봉 고분은 평면 형태가 장구와 닮았다고 해 ‘장고형 고분’으로 불린다. 학술적으로는 앞부분이 네모지고 뒷부분이 둥근 ‘전방후원형 고분’으로 분류된다. 방산리 성마산 산성 동쪽에 자리하며, 1986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됐다. 국가유산포털에 따르면 봉분은 자연 구릉처럼 거대하며 앞은 네모나고 뒤는 둥근 형태를 갖추고 있다.
정밀 발굴조사 이전에는 전체 길이가 약 76∼77m로 알려졌으나, 조사 과정에서 봉분 주변을 두른 도랑인 ‘주구’가 확인되면서 전체 규모가 약 82m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까지 한반도에서 확인된 장고형 고분 가운데 최대 규모로 평가된다. 연합뉴스
고분의 축조 시기는 봉분 조성 방식과 무덤방 구조, 출토된 뚜껑접시와 토기 등을 근거로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으로 추정된다. 이는 해남지역의 토착세력이 백제의 영향권으로 편입되는 한편, 가야·왜 등 남해와 서해의 여러 세력과 활발하게 교류하던 시기와 겹친다.
회색 점토로 완전히 밀봉된 무덤방
장고봉 고분의 학술적 가치는 거대한 외형에만 있지 않다. 발굴조사에서는 무덤방 상부 전체를 회색 점토로 감싸 완전히 밀봉한 독특한 구조가 확인됐다. 국내 장고형 고분에서 이러한 밀봉 방식이 온전하게 확인된 것은 매우 드문 사례다.
무덤방 입구에서는 매장시설을 폐쇄한 뒤 의례에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토기와 제기가 발견됐다. 일부 토기에서는 조기로 추정되는 생선뼈도 확인됐다. 이는 당시 사람들이 무덤을 만든 뒤 음식을 바치거나 망자의 안식을 기원하는 장례의례를 거행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장고봉 고분은 단순한 묘지가 아니라 토목기술과 장례의식, 사회적 위계가 결합한 정치적 기념물이었다. 길이 80m가 넘는 봉분을 조성하려면 상당한 노동력과 자원, 이를 동원할 수 있는 권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일본 고분과 닮았다고 ‘일본인의 무덤’은 아니다
장고형 고분은 일본열도의 전방후원분과 외형이 비슷해 한일 고대사 연구에서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형태가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장고봉 고분을 일본인이 만든 무덤이나 일본의 직접 지배를 보여주는 유적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고분의 주인을 밝히려면 무덤방 구조와 축조기법, 토기 제작 방식, 장신구와 무기, 매장 풍습, 주변 취락 및 다른 고분과의 관계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 현재 학계에서는 해남의 유력한 토착세력이 국제적인 장고형 묘제를 선택해 자신의 권위와 대외관계를 드러냈을 가능성이 중요하게 논의되고 있다.
서현주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도 출토 유물을 근거로, 왜·신라·가야와 교류하던 해남의 지역세력이 백제와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고분과 토기를 통해 정체성을 나타낸 결과로 해석했다. 이는 장고봉 고분을 어느 한 국가나 민족의 유적으로 단순화하기보다 백제화 과정과 해상교류가 교차한 복합유산으로 살펴야 한다는 의미다.
북일면 일대 고분군과 함께 봐야 할 역사유산
북일면에는 장고봉 고분뿐 아니라 신월리 방대형고분, 용일리 용운고분군, 방산리 독수리봉고분군, 내동리 밭섬고분군 등 서로 다른 형태와 시기의 고분이 집중돼 있다.
이들 고분의 분포는 북일면 일대가 고대 해상교통과 지역정치의 중요한 거점이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장고봉 고분도 하나의 독립된 무덤으로만 보기보다 주변 산성·취락·해안항로 및 여러 고분군과 연결해 해석해야 역사적 실체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사진 속 눈 덮인 봉분은 말이 없지만, 그 내부에는 1,500여 년 전 해남 사람들이 구축했던 권력과 장례문화, 바다를 통한 국제교류의 기억이 겹겹이 쌓여 있다.
다만 사진에 나타난 외형만으로 피장자의 신분이나 민족, 정확한 축조 연대를 확정할 수는 없다. 장고봉 고분의 역사적 위상을 온전히 밝히려면 주변 고분군과 생활유적을 연계한 추가 발굴조사, 출토유물의 과학적 분석, 체계적인 보존·정비가 계속돼야 한다.
해남뉴스 박충배 편집 및 논설위원 news@hbcnews.kr
2026.08.24 (월) 13: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