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지면 군곡리 조우 / 사진제공=AI호남뉴스 |
청동기시대 후기부터 삼국시대까지 이어진 대규모 생활유적
조개껍데기층 14개 층위…호남 고고학의 시대 구분 기준
주거지·토기가마·중국 화폐 ‘화천’ 등 출토
제주·중국·일본을 연결한 서남해 해상교류 거점 가능성
“단순한 조개무지가 아니라 생산·교역 기능을 갖춘 고대 해양 취락”
【해남=해남뉴스】 haenamnews@kakao.com
해남군 송지면 군곡리의 넓은 들판 한가운데 자리한 낮은 구릉이 고대 서남해 해양세력의 생활과 교류 흔적을 간직한 ‘해남 군곡리 패총’이다.
사진에서 주변 농경지보다 높게 솟아 있는 구릉이 군곡리 유적의 중심부다. 현재는 바다와 다소 떨어져 보이지만, 고대에는 백포만과 연결된 해안 환경을 이용할 수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사진만으로 특정 집자리나 유구의 정확한 위치까지 판별할 수는 없다.
군곡리 패총은 옛사람들이 먹고 버린 조개껍데기만 쌓인 장소가 아니다. 집자리와 토기가마, 생활용 토기와 철기, 뼈·뿔로 만든 도구 등이 확인된 복합 생활유적이다. 국가유산청 자료에 따르면 겉으로 드러난 패총의 범위만 너비 약 200m, 길이 약 300m에 달해 서남해안의 대표적인 대형 패총으로 평가된다.
1986년부터 1988년까지 국립광주박물관과 목포대학교 박물관이 실시한 세 차례의 발굴조사에서는 패각층이 모두 14개 층으로 구분됐다. 이 층위는 청동기시대 후기부터 초기 철기시대, 마한을 거쳐 삼국시대에 이르는 문화 변화를 보여줘 호남지역 고고학의 연대와 토기 변화를 연구하는 중요한 기준이 됐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특히 중국 신나라 때 만들어진 화폐인 ‘화천(貨泉)’과 제주계 현무암 성분이 포함된 토기 등이 발견됐다. 이러한 유물은 군곡리 사람들이 해남반도 안에서만 생활한 것이 아니라 영산강 유역과 제주도, 중국을 잇는 해상교류망에 참여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최근 조사에서는 실제 배의 선수와 선미, 노걸이와 돛 설치 구조를 표현한 소형 배 모양 토제품도 출토됐다. 이는 군곡리 주민들의 삶에서 배와 바닷길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평가된다. 다만 군곡리를 곧바로 ‘국제무역항’으로 확정하려면 선착장이나 접안시설 등 항만 관련 유구에 대한 추가 고고학적 검증이 필요하다. 배 모양 토제품 발굴 보도
군곡리 패총은 마한 사람들의 음식과 주거, 토기 생산은 물론 바다를 통한 물자와 문화의 이동까지 한 공간에서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2003년 사적으로 지정됐으며, 현재 지정 명칭은 ‘해남 군곡리 패총’이다.
사진 설명
해남군 송지면 군곡리 들판 가운데 솟아 있는 군곡리 패총 전경. 청동기시대 후기부터 삼국시대까지 사람들이 생활한 복합유적으로, 집자리와 토기가마, 중국계 화폐와 배 모양 토제품 등이 발견돼 고대 서남해 해상교류의 실체를 밝히는 핵심 유적으로 평가받는다.
해남뉴스 박충배 편집 및 논설위원 news@hbcnews.kr
2026.08.06 (목) 02: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