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지 군곡 유적 토기 / 사진제공=AI호남뉴스 |
흙 속에 묻혀 있던 토기가 오랜 세월을 지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사진은 해남군 송지면 군곡리 유적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 토기의 현장 모습이다. 토기의 아가리 부분과 몸체 일부가 손상됐지만, 둥글게 부푼 몸체와 표면에 남은 제작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사진만으로는 토기의 정확한 기종과 제작 시기를 확정하기 어렵다. 토기의 형태와 흙 성분, 굽는 온도, 표면 문양은 물론 출토 위치와 주변 유물, 지층의 선후 관계까지 종합해야 경질무문토기·회색연질토기·타날문토기 등의 세부 유형을 판정할 수 있다.
국가 사적인 해남 군곡리 패총은 청동기시대 후기부터 철기시대와 삼국시대까지 사람들이 장기간 생활했던 복합유적이다. 패총은 조개껍데기뿐만 아니라 토기 조각과 동물 뼈, 생활도구 등이 함께 쌓인 유적으로, 당시 주민들의 식생활과 생산활동·교역 관계를 밝히는 ‘생활사의 기록창고’로 평가된다.
군곡리 패총에서는 주거지와 토기가마를 비롯해 경질무문토기, 시루, 굽다리접시, 철기, 석기, 골각기, 점뼈와 장신구 등이 확인됐다. 중국 신나라 때 만들어진 화폐인 ‘화천(貨泉)’과 외래계 유물도 출토돼 군곡리 일대가 백포만을 기반으로 중국과 한반도 서남해안, 제주와 일본열도를 잇는 해상교류망에 참여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특히 패각층은 표토와 기반층을 제외하고 14개 층으로 구분되며, 이를 다시 5개의 문화층으로 나눌 수 있다. 각 층에서 출토된 토기의 변화 양상은 청동기시대 후기에서 초기 철기시대와 마한·삼국시대로 이어지는 호남지역 토기문화의 흐름을 밝히는 기준이 되고 있다.
학계는 군곡리 Ⅱ기층에서 확인된 승문 계통의 타날문토기를 호남지역의 이른 시기 자료로 주목한다. 이는 군곡리 주민들이 외부에서 들어온 새로운 토기 제작기술을 받아들이면서 지역의 전통적인 제작방식과 결합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자료다.
군곡리에서 확인된 토기가 단순한 생활용기를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토기의 크기와 형태는 음식의 저장·조리·운반 방식을 보여주고, 태토와 제작기술은 생산체계와 기술 수준을 드러낸다. 출토 위치와 층위는 마을이 형성되고 변화한 시기를 복원하는 시간표가 된다.
사진 속 토기 역시 정확한 조사 기록과 실측·분석이 뒷받침된다면 2천여 년 전 군곡리 사람들이 무엇을 담고, 어떻게 음식을 조리하며, 어떤 기술과 교류망 속에서 생활했는지를 밝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군곡리 패총은 단순히 조개껍데기가 쌓인 유적이 아니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고대 해남 사람들이 토기를 만들고 음식을 저장하며 외부 세계와 교류했던 흔적이 층층이 남아 있는 서남해안 고대사의 현장이다.
사진설명
해남군 송지면 군곡리 유적의 땅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토기. 둥근 몸체와 아가리 부분이 확인되지만, 정확한 기종과 제작 시기는 출토 층위와 태토·소성 상태 등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을 거쳐야 판정할 수 있다. 군곡리 출토 토기는 청동기시대 후기에서 철기시대와 마한·삼국시대로 이어지는 해남지역 생활문화와 토기 제작기술을 밝히는 핵심 자료다.
해남뉴스 박충배 편집 및 논설위원 news@hbcnews.kr
2026.08.06 (목) 02: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