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을 속 깨어나는 2천 년의 기억…해남 군곡리 유적, 마한 해상세력의 흔적을 품다 기원전 1세기 전후부터 기원후 3세기까지 이어진 서남해안 최대 규모 패총 해남뉴스 박충배 편집 및 논설위원 news@hbcnews.kr |
| 2026년 07월 24일(금) 22:23 |
![]() 송지 군곡 유적 / 사진제공=AI호남뉴스 |
해 질 무렵 전남 해남군 송지면 군곡리 유적의 구릉 위로 고목과 바위가 짙은 실루엣을 드러내고 있다. 붉게 물든 하늘 아래 고요히 남은 풍경은 약 2천 년 전 백포만을 터전으로 살아간 고대 해남 사람들의 삶과 바닷길을 떠올리게 한다.
사적으로 지정된 ‘해남 군곡리 패총’은 우리나라 서남해안에서 확인된 패총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유적으로 평가된다. 현재는 1930년 백포만 방조제가 축조되면서 육지 안쪽에 자리하지만, 유적이 형성될 당시에는 바다와 맞닿은 해안 구릉이었다. 국가유산 지정 면적은 8만3천557㎡에 이른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군곡리 유적은 1983년 처음 알려졌으며, 1986년부터 1988년까지 진행된 발굴조사에서 패각층과 집터, 토기가마 등이 확인됐다. 패각층은 표토와 생토를 제외하고 모두 14개 층으로 구분돼 호남지역 초기 철기시대 유적의 연대를 설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됐다.
유적에서는 경질민무늬토기와 점토대토기, 회색연질토기, 타날문토기를 비롯해 철기·석기·골각기·장신구·동물뼈 등이 출토됐다. 특히 중국 신나라 때 만들어진 화폐인 ‘화천(貨泉)’이 발견돼 당시 백포만을 중심으로 중국과 한반도, 일본 열도를 잇는 해상교류가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제주지역과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현무암 계통 태토의 토기도 확인됐다. 이는 영산강 유역과 해남반도, 제주도를 잇는 바닷길을 따라 사람과 물품, 토기 제작기술이 오갔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구릉 정상부에서는 다수의 집터가 확인됐고, 구릉 사면에서는 토기를 구웠던 지하식 굴가마가 발굴됐다. 중앙부 바위 주변에서는 제사와 관련된 것으로 해석되는 시설도 조사돼, 군곡리가 단순히 조개껍데기를 버린 장소가 아니라 생산·주거·의례 기능을 함께 갖춘 중심 취락이었음을 보여준다.
군곡리 유적의 역사적 가치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사회와 이후 마한·삼국시대 취락을 연결해 준다는 데 있다. 기원전 1세기 전후부터 기원후 3세기 무렵까지 이어진 문화층은 해남지역 고대사회의 성장과 해상세력의 활동 범위를 밝히는 핵심 자료다.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다만 사진 속 바위가 발굴조사에서 언급된 제사시설 주변의 중심 바위와 동일한 유구인지는 사진만으로 확정할 수 없다. 정확한 성격과 연대는 발굴도면 및 현장 위치 대조를 거쳐 판단해야 한다.
사진 설명
해남군 송지면 군곡리 유적의 구릉 위로 저녁노을이 번지고 있다. 약 2천 년 전 백포만을 오가던 마한 사람들의 생활과 해상교류 흔적을 간직한 군곡리 유적은 서남해안 고대문화를 밝히는 대표적인 복합유적이다. 사진 속 바위의 구체적인 고고학적 성격은 별도의 현장 확인이 필요하다.
해남뉴스 박충배 편집 및 논설위원 news@hbcnews.kr